
안보관광지에서 머무는 힐링 여행지로… 2028년까지 소리 명상공원과 맨발 황토길 조성
댐이라는 단어에서 명상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과 긴장감 도는 안보 관광의 풍경이 먼저 그려지기 때문이다. 강원 화천의 평화의댐도 오랫동안 그런 이미지로 기억돼 왔다. 그런데 이곳에 소리 명상공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 한쪽이 조용히 환해졌다. 분단의 무게를 품은 자리에 고요를 들이겠다는 발상. 명상을 오래 곁에 두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반갑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다.
화천 평화의댐, 체류형 힐링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화천군과 한국수자원공사 평화의댐지사는 지난 9월 18일 화천군청에서 평화의댐 체류형 힐링공간 조성사업 시행 협약을 맺었다. 협약식에는 김세훈 화천군수와 신필수 평화의댐지사장이 참석했다. 이번 사업은 한국수자원공사의 댐 지원사업 지자체 신규사업 공모에 선정돼 추진되며, 총사업비 12억 원 가운데 수자원공사가 5억 원, 화천군이 7억 원을 부담한다. 평화의댐지사가 사업비를 지원하고 화천군은 행정 절차와 운영 관리를 맡는 구조다.
사업의 방향은 분명하다. 둘러보고 떠나는 방문형 관광지에서 머물며 쉬어가는 체류형 관광지로 바꾸는 것이다. 완공 목표는 2028년이다.
소리 명상공원과 맨발 황토길, 일곱 가지 힐링 시설
화천군은 댐 하류 공원에 한옥 원형회랑 쉼터를 조성하고 소리 명상공원, 맨발 황토길, 빛 체험 공간, 별자리 관측 공간, 힐링 에코라이드, 무인 농산물 판매장까지 모두 일곱 개 사업을 추진한다.
목록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소리 명상공원에서 오래 머물렀다. 구체적인 설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강 상류의 물소리와 산골짜기를 지나는 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명상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느려진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명상의 가장 오래된 입구 가운데 하나다. 소리를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도 조금씩 자리를 비켜준다.
둥근 회랑 안에서 쉬어가는 한옥 쉼터, 흙의 감촉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걷는 황토길, 산으로 둘러싸인 댐 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별자리 관측까지. 하나하나가 따로 떨어진 시설이라기보다 하루를 천천히 보내는 여정처럼 이어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분단의 역사 위에서 평화를 사유하는 자리
평화의댐은 화천과 양구 경계의 북한강 상류에 자리한다. 1980년대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대응해 국민 성금으로 짓기 시작한 곳으로, 높이 125m, 길이 601m에 이른다. 댐 벽면에는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이름의 대형 트릭아트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주변에는 평화를 되새기게 하는 공간이 모여 있다. 분쟁을 겪은 나라들의 탄피로 만든 종을 직접 쳐볼 수 있는 세계평화의종공원, 가곡 비목이 탄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비목공원, 폐군사 장비를 평화의 상징물로 바꿔 전시하는 국제평화아트파크, 댐의 건립 배경을 살펴볼 수 있는 물문화관이 대표적이다. 오토캠핑장과 백암산 케이블카도 가까이 있다.
이 풍경들 사이에 명상공원이 들어선다는 사실이 유독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바깥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장소에서 안쪽의 평화를 연습할 수 있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긴장과 대립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한 뒤,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안의 갈등을 바라보는 시간. 평화라는 단어가 비로소 내 몸의 감각으로 내려오는 순간이 아닐까.
머무는 여행이 마음에 남기는 것
김세훈 군수는 평화의댐을 자연과 평화, 힐링을 함께 경험하는 대표 체류형 관광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화천군은 방문객의 숙박과 체험, 농산물 구매가 지역 농가와 주민 소득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기대하고 있다.
여행을 오래 다니다 보면 기억에 남는 곳은 많이 본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문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다음 목적지로 떠나는 여행은 금세 흐려지지만, 한자리에서 충분히 숨을 고른 여행은 몸 어딘가에 오래 남는다.
2028년, 평화의댐 하류 공원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명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분단의 상징이던 댐 아래에서 저마다의 평화를 찾는 풍경이라니. 그 첫 번째 가을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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