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쥐어짜도 가사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마감은 다가오고, 멜로디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데, 정작 언어는 텅 빈 머릿속을 맴돌기만 한다.
작사가 이치훈도 그런 순간을 맞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OST '어른'을 쓰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해법은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아니었다. 내려놓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자 비로소 문장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경험이 책 한 권이 되었다.
작사를 통해 명상을 발견하다
2026년 4월, 이치훈 작사가의 첫 산문집 『명상하는 마음』이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20년 넘게 노랫말을 써온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산문의 형태로 풀어낸 책이다.
이치훈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수 박화요비의 〈미안하지만 이렇게 해요〉로 작사가 데뷔를 한 이후, 이문세, 임재범, 양파, 포레스텔라, 웅산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오랜 시간 한국 대중음악의 언어를 빚어왔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나의 아저씨〉 '어른', 〈이태원 클라쓰〉 '돌덩이'와 '우리의 밤' 같은 노랫말들은 많은 이들의 일상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음악을 만드는 일 자체가 명상이었다"
『명상하는 마음』은 단순한 자기계발서나 명상 입문서가 아니다. 작사가라는 직업인이 언어와 침묵, 소리와 고요 사이에서 발견한 내면의 여정을 담은 산문집이다.
이치훈은 오랜 시간 음악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명상을 만났다고 말한다. 억지로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내면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언어 이전의 고요와 조우했다. 그 접점이 바로 명상이었다.
이후 그는 음악과 명상이 서로의 길이 될 수 있는지 탐구하고 훈련하며 그 경계를 넓혀왔다. 현재 KAIST 명상과학연구소에서 연구 중인 하트스마일명상(HST)의 시드 티처이자 공동체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학부생 대상 '마음챙김 명상' 강의도 진행 중이다.
음악명상 그룹 '케렌시아'에서 기업 임원 명상 프로그램까지
단순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치훈은 음악명상 그룹 '케렌시아'로 활동하며 SK, LG, 한화 등 대기업 임직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왔다. 최인아책방에서는 '수요 명상 클래스'를 열어 일상 속 명상의 가치를 나눴고, 뮤지엄 산 명상관, 제주 해비치리조트, 장욱진미술관 등 다채로운 공간에서 음악명상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명상은 방석 위의 정적인 수행이 아니다. 소리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가장 일상적인 삶의 결 안에서 고요를 찾아내는 실천이다.
내려놓음으로써 채워지는 것들
『명상하는 마음』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유명 드라마 OST를 쓴 작사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더 잘 쓰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순간의 이야기,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쏟아진 언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어떻게 비울 수 있는가'를 묻는 책이다. 그리고 그 비움의 과정이 음악 창작이든, 일상의 고됨이든, 결국 같은 언어로 이야기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무언가를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 『명상하는 마음』 ▲ 이치훈 ▲ 웅진지식하우스 ▲ 17,8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