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이후의 시간이 하루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 되고 있다. 서울시가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도시의 시간을 넓히는 '서울형 야간경제'를 본격 추진하면서, 도심 사찰의 명상 프로그램과 야간 등산을 밤의 문화 콘텐츠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일 서울시청에서 '24시간 활력경제도시 서울'을 발표하고, 문화와 체육, 관광과 상권, 교통과 안전, 청결과 위생을 하나로 연결하는 야간경제 종합계획을 밝혔다.
소비를 늘리는 밤이 아니라, 더 잘 누리는 밤
서울시는 이번 정책이 영업시간 연장이나 심야 소비 장려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오 시장은 "야간경제라고 하면 밤 늦게까지 문을 열고 소비를 늘리는 정책을 떠올리기 쉽다"며 "서울이 만들려는 야간경제는 출발점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퇴근 이후 걷고 운동하고 공연을 보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 여유를 누리는, 그렇게 늘어난 사람의 활동과 체류가 골목의 식당과 상점, 지역의 문화와 관광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시는 시민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밤, 서울만의 매력으로 더 오래 머무르는 밤, 이동과 안전이 확보된 질서 있는 밤,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밤을 네 가지 전략 축으로 제시했다.
산과 사찰이 밤의 콘텐츠가 된다
명상계가 주목할 대목은 서울의 산과 도심 사찰을 야간 콘텐츠와 결합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도심 야경을 즐기는 K-등산과 사찰에서 만나는 명상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서울의 자연과 전통문화를 밤에만 경험할 수 있는 힐링 콘텐츠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스포츠와 축제 역시 같은 방식으로 야간 콘텐츠와 묶인다. 경기와 축제를 즐긴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인근 시장과 골목상권으로 잇겠다는 구상이다.
[이미지: 법당에서 방석에 앉아 명상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공식 프레스 이미지 또는 Unsplash "meditation temple Korea" 검색, 사용 가능 여부 확인 필요]
"웰니스 활성화에 사찰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추구하는 웰니스 활성화에 있어서 사찰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야간에 체험하는 사찰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사찰들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참여 사찰과 프로그램 구성, 운영 시작 시점 같은 세부 내용은 이번 발표에서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 도심에서 사찰은 이미 접근성 좋은 수행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운영하는 템플스테이를 비롯해 도심 사찰의 명상과 참선 프로그램은 외국인 방문객에게도 알려져 있다. 여기에 밤 시간대 운영이 더해지면, 하루를 마친 직장인이 큰 준비 없이 찾을 수 있는 회복의 선택지가 넓어진다.
남산 숲과 동네 공원에도 스며드는 회복의 시간
남산은 백범광장 감성 캠프닉과 야간 단풍길, 반딧불 정원 등을 통해 숲과 야경을 함께 즐기는 도심 힐링 명소로 육성한다. 명동의 활기와 남산의 휴식을 하나의 야간 관광 축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권역별 공원에서는 요가와 스트레칭처럼 하루의 피로를 풀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한다. 서울숲과 매헌시민의숲에는 정원극장과 야간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시립 박물관과 미술관 등 8개 문화시설은 9월부터 주 5일 밤 9시까지 야간 개방을 순차 확대하고, 학교와 공원의 체육시설 269곳은 여건에 따라 최대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
밤길의 이동과 안전도 함께 설계됐다
10월부터는 기존 심야버스(N버스)에 더해 홍대와 광화문, DDP, 명동, 강남 등 주요 야간명소와 지하철역을 잇는 심야 '반딧불이버스'가 운행된다. 아시아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운행 시간은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 30분까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야간거점은 중점관리구역으로 지정해 AI 기반 인파 감지 CCTV로 혼잡을 실시간 확인하고, 보건소와 소방, 병원을 연계한 거점별 응급의료 대응체계를 구축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지역에는 서울경찰청 광역예방순찰대 49명을 배치하고, 내년부터 서울보안관 100명을 도입한다. 야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는 청결기동대 150명이 투입된다.
내년 1월 조례 시행 목표… 남은 과제는 균형
서울시는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야간경제 활성화 기본조례'를 마련하고, 9월에는 서울야간경제위원회를 출범시켜 기본계획과 상생특구, 규제개선을 자문받는다. 흩어진 야간 콘텐츠는 '서울 나이트 맵'으로 묶어 야간명소와 프로그램, 이동 정보를 한곳에서 제공한다.
시는 5년 뒤 연간 야간 소비 5조원 추가 창출과 외국인 관광객 3000만명, 소상공인 야간 매출 비중 50% 이상을 목표로 제시했다.
사찰 명상이 서울의 밤에 자리 잡으려면 풀어야 할 숙제도 남는다. 수행 공간으로서의 고요함과 관광 수요 사이의 간격, 야간 소음과 인근 주민의 수용성, 사찰별 운영 여력 같은 조건이 함께 조율돼야 한다. 그럼에도 도시가 밤의 회복을 정책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다. 서울의 밤이 소비의 시간을 넘어 쉼의 시간이 될 수 있을지, 그 답의 한 자락이 도심 사찰의 고요 안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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