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년고찰 지리산 화엄사가 이번 겨울,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오는 12월 13일, 화엄사는 청소년들의 마음 건강을 위한 'K명상 힐링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학업과 관계 스트레스로 지친 청소년들이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그 소중한 여정이 지리산 자락에서 펼쳐진다.
청소년이 직접 제안한 특별한 힐링 프로그램
이번 행사가 더욱 의미 깊은 이유는 청소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낸 결과라는 점이다. 구례 지역 청소년 또래 상담 동아리 '솔리언'이 필요성을 건의했고, 화엄사가 흔쾌히 후원에 나서며 이뤄진 협업의 결실이다. 솔리언은 학교폭력 예방과 또래 상담을 위해 활동하는 청소년 자치 조직으로, 친구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건강한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청소년들의 모임이다.
관내 중·고교생 80여 명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지리산 대화엄사 화엄원 일원에서 진행된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천년 사찰의 고요함 속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포스트잇 Q&A로 시작되는 솔직한 대화
행사는 포스트잇 Q&A로 문을 연다. 청소년들은 평소 말하기 어려웠던 고민들을 익명의 포스트잇에 담아낸다. 친구 관계, 학업 스트레스, 진로 고민, 가족과의 갈등...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들이 작은 종이 조각 위에 솔직하게 펼쳐진다. 이어지는 '내 마음을 이해하기' 강의에서는 전문 강사의 지도 아래 명상의 기초를 배우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익힌다.
마음챙김 요가로 찾는 심리적 안정
K명상의 핵심 프로그램은 마음챙김 요가다. 깊은 호흡과 함께 신체를 천천히 이완하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시간이다. 청소년들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의 수레바퀴를 잠시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은 청소년기에 특히 중요한 심리적 자원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집중력을 높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색으로 표현하는 내면의 감정, 만다라 명상
오후에는 미술치료 전문가가 진행하는 만다라 색칠 명상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만다라는 '원'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로, 완전함과 조화를 상징한다. 청소년들은 기하학적 무늬의 만다라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상태를 색으로 표현한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각자가 선택한 색깔 하나하나에 마음의 결이 담긴다.
색칠을 마친 후에는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같은 만다라 도안이지만 각자의 색채는 전혀 다르다. 친구들의 작품을 보며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을 경험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서적 치유를 얻게 된다.
'화엄사 꽃스님' 범정스님과의 소중한 대화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화엄사 꽃스님'으로 유명한 범정스님과의 대화 시간이다. SNS에서 3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범정스님은 MZ세대와 소통하는 대표적인 젊은 스님이다. 1993년생인 범정스님은 15세에 화엄사에 출가해 현재 화엄사 홍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수행자는 꽃이며, 꽃이 되어야 한다"며 "기약 없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품은 향을 맡게 해주는 꽃다운 수행자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스스로 '꽃스님'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청소년들은 범정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질문들을 자유롭게 나눈다. 명상이 일상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방법, 자신을 사랑하는 법 등 청소년 시기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또래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젊은 스님의 이야기는 청소년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청소년 힐링 플랫폼
구례군 관계자는 "학업과 관계 스트레스가 큰 시기인 만큼 청소년들이 잠시 멈추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기획했다"며 "지역 공동체, 교육기관, 사찰이 함께 협력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행사는 구례군청, 구례 지역 중·고등학교, 화엄사, 그리고 청소년 동아리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역사회 전체가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한마음으로 움직인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직접 필요성을 제기하고, 어른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실현했다는 점에서 세대 간 소통의 모범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
K명상, 한국형 마음 치유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번 행사명에 붙은 'K명상'이라는 표현도 눈에 띈다. K-팝, K-드라마에 이어 K-명상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선(禪) 수행과 현대 심리학이 결합된 한국형 명상법을 의미한다. 사찰이라는 전통 공간에서 마음챙김 요가, 만다라 명상 같은 현대적 프로그램을 접목해,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힐링 프로그램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과 SNS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빠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청소년들에게 K명상은 마음의 중심을 찾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템플스테이를 넘어 일상으로 확장되는 명상 문화
화엄사는 20여 년의 템플스테이 노하우를 보유한 명상 명소다. 지리산과 섬진강 사이에 자리한 천년고찰에서의 명상 체험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최근에는 야간 사찰 탐방 프로그램 '화야몽'이나 청년 대상 캠플스테이 '하신화심' 등 다양한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이번 청소년 K명상 힐링의 날 역시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이다. 단순히 하루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일상에서도 명상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주는 것이 목표다. 참가자들은 화엄사에서 배운 호흡법과 마음챙김 기법을 학교와 집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시험 전 긴장을 풀 때, 친구와 다툰 후 감정을 추스를 때, 진로 고민으로 막막할 때, 깊은 호흡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평생의 자산이 될 것이다.
청소년 정신건강, 사회적 관심과 지원 필요
최근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학업 스트레스, 입시 경쟁, 또래 관계의 어려움, SNS상의 비교와 소외감 등 청소년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청소년 우울증과 불안장애도 증가 추세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의 정신건강 관리가 평생의 심리적 웰빙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면, 성인이 되어서도 스트레스에 건강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례 화엄사의 K명상 힐링 프로그램은 단순한 행사가 아닌,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예방적 개입이자 교육적 시도로 평가받을 만하다.
지리산 자락, 천년의 지혜가 머무는 곳
화엄사는 신라 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역사적 장소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과 섬진강의 부드러운 바람이 함께 머무는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자연과 문화유산, 그리고 불교의 지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특히 동자승 석상 앞에서 '불견(不見), 불문(不聞), 불언(不言)'의 의미를 되새기며, 타인의 잘못을 보려 하지 말고, 나쁜 소문을 듣지 말며, 험한 말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배운다. 이러한 불교의 가르침은 SNS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더욱 절실한 지혜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시간
12월 13일, 지리산 화엄사에서 펼쳐질 청소년 K명상 힐링의 날. 80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친구들과 공감하며, 스님과 대화하는 7시간의 여정을 떠난다. 이 시간 동안 청소년들은 몸의 근육이 아닌 마음의 근육을 키우게 될 것이다.
멈춤의 용기,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 K명상 힐링의 날이 청소년들에게 선물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속도를 찾고, 비교와 경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불안과 걱정 속에서 현재의 평화를 누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
구례군과 화엄사, 그리고 솔리언 청소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특별한 하루가, 많은 청소년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물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