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죽음을 마주볼 때, 삶이 비로소 깊어진다 — 『티베탄 레퀴엠』

티베탄 레퀴엠 책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티베탄 레퀴엠 책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티베트 불교 죽음 명상의 정수를 담은 책 『티베탄 레퀴엠』이 출간됐다. 저자 글렌 H. 멀린이 전하는 포와 수행, 죽음 준비 명상, 장수 요가의 지혜를 소개한다.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눈을 돌리는가. 아직 멀었다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지금 당장 생각하기 싫다고. 그렇게 외면하는 사이, 삶은 번갯불처럼 지나간다.

티베트 불교는 수천 년 전부터 그 회피를 멈추라고 말해왔다. 죽음을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삶이 깊어지고, 두려움이 지혜로 바뀐다고. 그 오래된 가르침이 『티베탄 레퀴엠』(도서출판 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독자에게 닿았다.

『티베트 사자의 서』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지혜

1927년, 에반스-웬츠의 번역으로 『티베트 사자의 서』가 서양에 처음 소개됐을 때 세상은 충격을 받았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토록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다룬 문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그러나 저자 글렌 H. 멀린은 그 책이 '보완이 필요한 글'이었다고 말한다.

『티베탄 레퀴엠』은 그 빈자리를 채운다. 사후 세계에 집중했던 기존의 시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명상할 것인가를 다룬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차별점이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휴스턴 스미스 교수는 이 책을 두고 "티베트는 먼 과거 문명과 살아있는 마지막 연결 고리"라 했다. 이집트의 신비주의 종파는 사라졌고, 인도와 중국은 서구화에 침식됐지만, 티베트의 지혜만은 아직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수행법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철학 서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수행 지침서라는 데 있다.

포와(po-wa) 수행은 의식 전이를 위해 마음을 훈련하는 티베트 밀교의 핵심 수련이다. 죽음의 순간, 의식이 어디로 향할지를 살아있는 동안 미리 연습하는 것이다. 명상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갈고닦은 이 수행법의 정수가 이 책에 담겼다.

요가적 장수 수행 또한 흥미롭다. 때 아닌 죽음의 도래를 거부하는 것, 즉 수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요가 수련법이 소개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삶을 더 충만하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신선하다.

아울러 위대한 요가 수행자들, 명상가들, 성인들의 임종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 마지막 순간의 모습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책은 또한 죽은 이를 위해 읽어야 할 의식적인 글과 고인을 돌보는 절차도 기록하고 있어 남겨진 이들에게도 실질적인 위로와 안내가 된다.

저자 글렌 H. 멀린, 그는 누구인가

저자 글렌 H. 멀린(Glenn H. Mullin)은 캐나다 퀘벡 출신의 티베트 학자이자 티베트 불교 영적 교사다. 1972년부터 1984년까지 인도 히말라야에 머물며, 티베트 불교 4대 학파의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스승 35명으로부터 직접 철학, 문학, 명상, 요가를 배웠다.

달라이라마의 법제자로도 알려진 그는 '라마 글렌'이라 불리며, 재가자임에도 수행의 깊이를 인정받아 라마의 칭호를 얻었다. 40여 권의 저서 및 번역서를 남겼고, 티베트 관련 영화 제작에도 자문 역할을 해왔다.

이 책의 원서 『Living in the Face of Death』는 1998년 출간됐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한국어로 번역한 이는 요가 명상 지도자이자 고전 문헌 연구가인 김윤이 작가다. 임종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어가는 환자를 대상으로 20년 이상 일하면서 이 훌륭한 책에 쓰여진 내용의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죽음 명상이 삶을 바꾼다

제7대 달라이라마 걀와 칼장 갸초는 말했다. "인생은 번갯불처럼 지나가는데, 죽음의 요원들이 그대를 포위할 때 그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하는가."

이 물음이 불편하다면, 아직 삶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죽음을 직시하는 용기가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 온전하게 살아가게 한다는 것, 『티베탄 레퀴엠』이 전하는 핵심이다.

죽음 명상이 낯설고 무겁게 느껴지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히말라야의 수행자들이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지혜가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러나 깊게 울린다.

도서 정보

제목: 『티베탄 레퀴엠 — 티베탄 전통의 죽음을 마주보며 살기』

원제: Living in the Face of Death (1998)

저자: 글렌 H. 멀린(Glenn H. Mullin)

역자: 김윤이

출판사: 도서출판 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