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 사이를 걷다 멈추면 비로소 들린다, 제주 서귀포 치유의 숲

사진출처 : 비짓 제주 홈페이지
사진출처 : 비짓 제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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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남쪽 사면의 숲은 아침마다 물기를 머금는다. 바다에서 올라온 습기가 산자락에 걸리면 편백과 삼나무 사이로 옅은 안개가 흐르고, 발밑의 흙은 소리를 삼킨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이 소리다. 차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잎이 스치는 소리와 자기 숨소리가 들어선다.

제주도를 찾는 이유는 대개 바다다. 그 바다에서 차로 20분 남짓 올라오면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숲이 있다.

시오름 자락, 2016년에 문을 연 숲

서귀포 치유의 숲은 서귀포시 호근동 산1번지 일대, 시오름 자락에 자리한다. 2016년 6월 문을 열었다. 새로 나무를 심어 만든 공간이 아니라 오래 자란 편백과 삼나무 숲, 그리고 옛 임도를 다듬어 치유의 목적에 맞게 정비한 곳이다.

주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산록남로 2271.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오르는 길에 있어 접근이 어렵지 않다. 제주국제공항에서는 평화로나 번영로를 거쳐 서귀포 방향으로 이동한 뒤 산록남로로 진입한다.

놀멍, 쉬멍, 오고생이 — 제주말로 이름 붙인 길들

이 숲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길 이름이다. 숲길에는 놀멍, 쉬멍, 오고생이 같은 제주 방언 이름이 붙어 있다. '놀면서', '쉬면서', '고스란히'라는 뜻이다. 걸음의 속도를 미리 정해주는 이름들이다.

길은 0.6㎞에서 2.1㎞ 사이로 짧게 나뉘어 있다. 종주를 목표로 삼는 등산로가 아니라, 한 구간씩 골라 걷고 앉았다 돌아가도록 설계된 구성이다. 체력이나 시간에 맞춰 조합할 수 있다.

전체 숲길을 이어 걸으면 상당한 거리가 되지만, 치유의 숲이 권하는 방식은 그 반대에 가깝다. 짧게 걷고 오래 머무는 쪽이다.

휠체어와 유아차도 들어가는 숲

서귀포 치유의 숲은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열린관광지'에 이름을 올렸다. 무장애 데크길과 나눔길을 갖춰 휠체어 이용자와 유아차를 동반한 방문객도 숲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다.

명상과 산림치유가 특정 체력을 갖춘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설계는 이 숲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국내 웰니스 관광지를 외국인에게 소개할 때도 접근성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방문자센터와 힐링치유센터, 숲속요가교실

숲 안에는 방문자센터와 힐링치유센터, 숲속요가교실이 마련돼 있다. 날씨가 궂은 날이나 프로그램 진행 시 실내 공간으로 쓰인다.

운영 프로그램은 몇 갈래로 나뉜다. 해설사가 동행하는 해설탐방, 정해진 요일에 운영하는 숲길 프로그램, 그리고 산림치유 프로그램이다. 산림치유 프로그램에는 스트레칭과 명상, 해먹에 누워 숲을 올려다보는 시간 등이 포함된다.

'궤엉숯굴보멍'은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잣담길 걸으멍'은 화요일과 금요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운영된다. 프로그램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며 회차별 정원이 있다.

[이미지: 숲속 해먹에 누워 나무 사이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 포토코리아 "산림치유 해먹" / Unsplash "forest hammock looking up" 검색]

이용 안내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산록남로 2271 (호근동 산1번지 일대)

  • 입장 시간: 하절기(4~10월) 08:00~16:00 입장, 동절기(11~3월) 09:00~16:00 입장

  • 휴무: 연중무휴 (기상 악화 시 입산 통제)

  • 해설탐방 요금: 어른 1,000원(단체 800원), 청소년 600원

  • 산림치유 프로그램: 성인 12,000원 (대상에 따라 6,000~8,400원 할인 적용)

  • 예약: 서귀포e티켓(eticket.seogwipo.go.kr)을 통해 사전 예약

  • 문의: 064-760-3067 / 064-760-3031~5

요금과 운영 시간, 프로그램 회차는 계절과 사정에 따라 조정될 수 있어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언제 가면 좋은가

편백과 삼나무 숲은 계절을 크게 타지 않는다. 다만 제주 남쪽 사면 특유의 습도를 고려하면 초여름과 초가을이 걷기에 편하다. 여름에는 이른 오전, 겨울에는 한낮 시간대가 무난하다.

비가 온 직후의 숲은 향이 짙어진다. 편백 향이 가장 진하게 올라오는 때이기도 하다. 우비를 챙긴다면 비 온 뒤를 노려볼 만하다.

명상 여행지로서의 자리

국내 산림치유 시설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늘었다. 그 가운데 서귀포 치유의 숲이 갖는 특징은 제주라는 목적지와 결합된다는 점이다. 바다와 오름을 보러 온 여행자가 하루를 떼어 숲에 머무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외국인 방문객에게 소개할 때도 이 조합은 강점이 된다. 사찰 수행이나 요가 리트릿 같은 형식적 문턱 없이, 걷고 앉고 누워 있는 것만으로 성립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무장애 시설을 갖췄다는 점도 함께 안내할 만하다.

명상은 특별한 장소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어떤 장소는 마음이 가라앉는 속도를 앞당긴다. 편백 사이에서 잠깐 멈춰 서 본 사람은 그 차이를 안다.

기사문의 : fare304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