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누각 안에 앉아 있었다. 그다음 작품에서는 누각이 사라지고 산 아래 그냥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머리카락도 없다. 옷도 없다. 오직 산과 태양과, 그 사이에 조용히 앉은 사람만 남았다.
화가 김상유(1926~2002)의 만년작 「청산록수(靑山綠水)」다.
그림 앞에 서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설명하거나 분석하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사라진다. 그냥, 같이 앉고 싶어진다.

겹겹이 벗겨진 것들—「청산록수」에 이르는 길
김상유의 그림 속 인물은 처음부터 이렇게 비어 있지 않았다. 초기 유화에서 그 사람은 단아한 기와지붕 아래, 전통 누각 안에 앉아 있었다. 「대산루」 연작에서처럼 넉넉한 여백 속에 정자가 있었고, 그 안에 명상하는 사람이 있었다. 새소리가 들릴 것 같았고, 바람이 스칠 것 같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그림은 점점 비어갔다.
누각이 사라졌다. 기와가 사라졌다. 배경이 단순해졌다. 그리고 「청산록수」에 이르러—인물에서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속세를 상징하는 옷마저 사라졌다. 산과 태양만이 남고, 그 앞에 오직 사람 하나가 앉아 있었다.
벗겨진 것들의 목록이 곧 이 그림의 언어다. 지위도, 역할도, 이름도, 형식도. 명상 수행자라면 이 과정을 안다. 앉아서 눈을 감을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서 하나씩 내려놓는 것들의 목록과 너무나 닮아 있다.
"이 인물은 나 자신이며, 우리 모두의 자화상"
작가는 생전에 이 명상하는 인물에 대해 직접 말했다.
"이 인물은 나 자신이며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 사람이 자신이라고 믿었고, 동시에 그 사람이 그림을 보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명상이 본래 그런 것 아닌가. 앉는 순간,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이 된다.
미술평론가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김상유 작품의 진면목을 "기교없는 기교의 멋"이라고 표현했다. 조용하고 단정하며 세심한 그림 속에 담긴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정신이 곧 한국적 정서를 오롯이 담아낸 힘이라 했다.
그 말을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청산록수」에는 어떤 기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앞에 서면 무언가 깊은 곳이 건드려진다. 기교를 지우는 데만도 평생이 걸린 셈이다.
작업 자체가 수행이었던 삶
김상유의 예술 여정은 수행자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목판화 작업을 위해 직접 나무를 잘라 목판을 만들고, 먹을 바른 뒤 한지를 놓고 놋쇠 숟가락으로 일일이 문질러 가며 한국의 정경을 새겼다.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서두르지 않고, 반복하며. 이 과정은 수행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유화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면천에 그림을 그리고, 닦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서양 유화의 물감에서 기름기를 닦아내어 색만 남겼다. 욕심을 걷어내고 본질만 남기는 행위—그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었고, 동시에 그의 삶의 방식이었다.
딸이자 김상유문화재단 이사장인 김삼봉은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은둔과 고독의 작가라고 불렀지만, 그는 혼자의 즐거움을 알고, 여행의 맛을 알며, 자기 수행을 위해 깊은 명상을 즐겼던 작가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수행이었고, 명상이 그림의 원천이었다. 경계가 없었다.
돌부처의 다짐—세심단속문 앞에서
어느 날, 그는 큰 절을 찾았다가 절 입구의 문 앞에 멈춰 섰다. 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세심단속문(洗心斷俗門)'. 마음을 씻고 세속을 끊는 문.
그 문을 지키는 작은 돌부처를 보며 그는 오래 서 있었다. 천 년의 세월을 저렇듯 의연하게 앉아 있는 돌부처. 비바람에도, 무관심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다짐했다.
나도 이제부터 저 돌부처 같은 사람이 되리라.
그 다짐이 「청산록수」가 됐다. 세속의 옷을 벗고, 이름을 벗고, 오직 산과 하늘과 자신만이 남은 자리. 천 년을 앉아 있는 돌부처처럼. 쉽게 닳지 않는 사람으로.
전시장에서 만나는 침묵의 언어
이번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은 서울미술관 부암동 본관 1층 800평 규모의 공간에서 열린다. 150여 점의 작품이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초기 동판화부터 목판화, 그리고 선화(禪畵)로 완성된 유화까지 연대기적으로 이어진다.
「청산록수」 앞에 서는 것은, 그가 평생에 걸쳐 걸어온 내면의 여정을 한 호흡에 만나는 일이다. 벗겨지고, 가벼워지고, 결국 산과 하늘과 하나가 되는 그 여정.
명상을 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명상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궁금해진 사람이라면—이 전시가 어떤 책보다, 어떤 강의보다 먼저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 말 없이.
전시는 8월 17일까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