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본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던 저녁이었다. 5월 첫 주말, 동대문구 홍릉의 김희수아트센터에서 마주한 ‘어둠속의 콘서트’는 시각을 거두고 청각과 진동만으로 한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 무대였다. 보지 않음으로써 다른 감각을 얼마나 더 깊이 느낄 수 있는지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홍릉 한복판에서 처음 만난 김희수아트센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살았지만 김희수아트센터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수성가한 재일사업가이자 중앙대학교 이사장을 22년간 지낸 동교 김희수 선생의 유지를 잇기 위해 수림문화재단이 2009년 세운 복합문화공간이다. 다음 세대에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인생의 하(下), 사업을 물려주는 것은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이 상(上)이라 했던 그의 말처럼, 이 아트센터는 전통예술과 신진 예술가를 묵묵히 무대 위로 올려보내고 있었다. 서울 동북부에 이렇게 깊고 단정한 공연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갑게 다가왔다.

촛불과 싱잉볼, 방짜유기의 첫 진동
공연장에 들어서자 무대를 가득 채운 수많은 촛불이 시야를 먼저 점령했다. 공(Gong), 싱잉볼, 핸드팬을 비롯한 명상악기와 한국 전통악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앞쪽 좌석은 캠핑 의자처럼 비스듬히 누울 수 있는 형태로 마련되어 있어 망설임 없이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좌석마다 담요와 안대, 그리고 1인 1개씩 준비된 싱잉볼이 놓여 있었다. 후원사인 이종덕 방짜유기 장인의 작품이다.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진행된 이완 시간이 인상 깊었다. 손바닥 위에 싱잉볼을 올리고 직접 두드려 진동을 느끼게 한 뒤, 그 떨림이 손끝에서 어깨, 가슴까지 번지는 감각을 따라가도록 안내했다. 전북 무형문화재 43호 이종덕 장인이 두드려 만든 방짜 싱잉볼은 히말라야 싱잉볼보다 주석 함유량이 두 배 이상 높아 한국 특유의 깊은 음색을 낸다. 그 한국의 소리가 닫혀 있던 몸의 감각을 가장 먼저 두드려 깨워주었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만난 판소리와 명상악기의 진동
담요를 덮고 안대를 쓰자 시야가 사라지고 청각만 남았다. 박설아 감독을 비롯해 최예나, 이현아, 인승현, 조성규, 박서현 등 여섯 예술가가 빚어낸 무대는 싱잉볼과 핸드팬으로 출발해 만트라, 판소리, 창이 겹겹이 포개지는 구성이었다. 한국 전통음악과 명상악기의 만남은 묘한 신비를 빚어냈다. 어둠 속에서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음악이 저 멀리에서 떠밀려 오는 듯했고, 어느 순간 가사 상태에 가까워져 무엇이 들리는지조차 분간이 어려워졌다. 깊은 물 속에 잠긴 채 누군가의 노래를 듣는 기분이었다.
시각장애 예술인의 목소리, 어둠을 빛으로 바꾸다
이번 무대에서 특별한 무게를 더한 것은 시각장애 예술인 이현아·최예나 두 사람의 존재였다. 오랜 시간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으로 관객을 만나온 그들의 길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보이지 않는 무대를 결핍이 아닌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꾸어내는 시간이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후원한 이 공연은 장애예술의 새로운 표현 방식을 음악으로 풀어낸 흔치 않은 실험이기도 했다.
한 시간, 그리고 오래 남은 잔향
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안대를 벗자 무대도, 연주자도, 촛불도 그대로였지만 몸 안의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외국인 관객이 함께 자리했더라면 더 신비롭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한국 전통음악과 명상이 만난 이 무대는 해외 관객에게도 충분히 와닿을 결을 갖고 있었다. 사회적협동조합 문화공장이 기획한 ‘어둠속의 콘서트’가 장애예술과 명상문화를 함께 빛내는 무대로 더 자주 만나지길 바라본다. 좋은 공연을 만나면 다시 김희수아트센터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