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공기가 먼저 달라진다. 해발 800미터 안팎의 분지에 사찰 백여 곳이 모여 앉은 마을, 일본 와카야마현의 고야산이다. 이곳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천이백 년 넘게 이어져 온 수행처다. 그리고 그 수행처의 문은 여행자에게도 열려 있다.
구카이가 연 산중 도량
고야산은 805년 고보 다이시로 불리는 승려 구카이(空海)가 창시한 진언종 불교의 중심지다. 그가 당나라에서 밀교를 배우고 돌아와 수행 도량으로 삼은 곳이 이 산이었다. 이후 천이백 년 동안 산 위에는 사찰이 들어섰고, 지금도 백여 곳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 안에서 반드시 들르게 되는 곳은 세 군데다. 구카이의 영묘가 있는 오쿠노인, 826년 구카이가 조성을 시작한 중심 가람 단조가란, 진언종의 총본산 사찰인 곤고부지다. 특히 오쿠노인으로 향하는 참배길은 수백 년 된 삼나무와 이십만 기가 넘는다고 전해지는 묘비 사이를 지난다. 낮에도 빛이 성기게 드는 그 길을 걷는 시간 자체가 하나의 수행처럼 다가온다.

절에서 자는 밤, 슈쿠보
고야산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슈쿠보(宿坊)다. 사찰이 직접 운영하는 숙박으로, 고야산에서는 50곳이 넘는 사찰이 여행자를 받는다.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손님으로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는 방식이다.
숙박비는 저녁과 아침 식사를 포함해 1인당 1만 엔에서 4만 엔 사이에 형성돼 있다. 사찰과 객실 등급, 계절에 따라 편차가 크다. 결제는 현금만 받는 곳이 많으니 미리 준비하는 편이 안전하다.
예약은 고야산 슈쿠보협회 공식 사이트(koyasan-shukubo.net)를 통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협회 앞으로 이메일이나 팩스로 예약을 넣을 수도 있고, 부킹닷컴이나 아고다 같은 숙박 예약 사이트를 통해 잡을 수 있는 사찰도 있다.
도착 시간에는 규칙이 있다. 저녁 공양이 대개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시작되므로, 오후 5시 이전에 절에 닿는 일정을 짜야 한다.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오사카에서 늦어도 오후 이른 시간에는 출발하는 편이 좋다.

쇼진료리, 채식으로 차려지는 저녁
슈쿠보의 저녁은 쇼진료리(精進料理)로 차려진다. 불교의 계율에 따라 육류와 어패류를 쓰지 않는 사찰음식이다. 곤약, 유바(두부 껍질), 고야두부가 대표적인 재료로 올라온다. 고야두부는 이 산의 이름을 딴 동결건조 두부로, 겨울 추위에 두부를 얼렸다 말리던 방식에서 유래했다.
상은 소박하지만 구성은 촘촘하다. 국과 밥, 절임, 조림과 튀김이 작은 그릇에 나뉘어 나온다. 맛을 강하게 내지 않는 조리 방식이라 처음에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하루를 걷고 난 뒤에는 그 담백함이 다르게 다가온다.
아침 예불과 아지칸 명상
슈쿠보에 묵는 이유의 절반은 아침에 있다. 사찰의 아침 예불은 대개 오전 6시 무렵 시작해 30분에서 45분가량 이어진다. 주지 스님과 승려들이 경을 독송하고 향을 사르는 의식에 숙박객이 함께 참여한다. 예불이 끝나면 오전 7시 전후로 아침 공양이 나온다.
명상 체험을 원한다면 아지칸(阿字観)을 눈여겨볼 만하다. 진언종에서 수행자가 부처와 하나 됨을 관하는 명상법으로, 산스크리트 문자 '아(阿)'를 대상으로 삼는다. 오후 늦은 시간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모든 사찰에서 운영하지는 않으므로 예약할 때 아지칸을 제공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반야심경을 손으로 옮겨 적는 사경(写経)도 널리 열려 있는 체험이다. 다이시교카이센터에서 문의해 참여할 수 있다. 한 자 한 자 붓을 옮기는 동안 자연스럽게 호흡이 느려지는 방식이라, 앉는 명상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에게도 접근이 쉽다.
이 밖에 계첸칸조(結縁灌頂)라는 입제 의식이 봄과 가을에 열린다. 봄에는 5월 3일부터 5일까지, 가을에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되며 참가비는 1회 3,000엔이다. 진언종의 전통 의식을 일반인이 경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가는 방법과 준비물, 옷차림
고야산으로 가는 일반적인 경로는 오사카에서 출발하는 난카이 전철 고야선이다. 난바역에서 열차를 타고 종점인 고쿠라쿠바시역까지 간 뒤, 케이블카로 갈아타 고야산역에 오르고, 다시 버스를 타고 마을 중심으로 들어간다. 열차와 케이블카, 버스를 묶은 '고야산 월드헤리티지 티켓'도 판매되고 있다.
구간별 소요 시간과 요금, 티켓 가격은 시기와 열차 종류(특급·급행)에 따라 달라진다. 난카이 전철 공식 안내에서 출발 당일 시각표와 요금을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준비물에서 놓치기 쉬운 것은 옷차림이다. 고야산은 산중 분지여서 오사카 시내보다 기온이 낮다. 여름에도 새벽 예불 시간에는 서늘하고,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상당히 춥다. 계절과 관계없이 여벌의 겉옷을 챙기는 편이 좋다.
ㅊ
명상 여행 목적지로서의 고야산
고야산이 명상 여행지로 갖는 강점은 체험이 따로 마련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데 있다. 여행자가 참여하는 아침 예불은 관광객을 위해 만든 행사가 아니라 그 절이 매일 치르는 일과다. 저녁상에 오르는 쇼진료리도 승려들이 먹는 그 음식이다. 하루를 절의 시간표에 맞추면,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도 수행 공동체의 리듬 안에 들어가게 된다.
한국 여행자에게는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오사카에서 당일 이동이 가능해, 간사이 지역 일정에 하루나 이틀을 붙이는 방식으로 짜기 쉽다. 국내 템플스테이를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두 나라 산사의 수행 문화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일정을 짤 때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고야산은 빠르게 도는 곳이 아니다. 오후에 올라와 오쿠노인 참배길을 천천히 걷고, 저녁상을 받고, 일찍 눕고, 새벽 향 연기 속에서 눈을 뜨는 하루. 이 산이 여행자에게 내미는 것은 그 한 바퀴다.
- 고야산 슈쿠보 공식 예약 사이트 — https://koyasan-shukubo.net/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