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조용해서 적막하기까지 한 곳. 절은 그런 곳이었다.
새벽 예불 소리, 향 냄새, 낮게 깔린 목탁 리듬.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요즘 20대들이 절에 간다. 합장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굿즈를 사러, 명상을 체험하러, 그리고 '힙한 공간'을 경험하러 간다. 심지어 사랑할 대상을 찾기 위한 탐험조차도 절에서 이루어진다.
왜 지금 불교인가 — '힙불교'의 탄생
현재는 바야흐로 '종교가 저물어가는 시대'이다.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은 이제 통치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고,제도화된 믿음보다 개인의 감각을 신뢰하는 세대가 사회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세대가 불교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신대승 네트워크의 조사에 따르면, 18~29세에서 가장 신뢰하는 종교는 불교(21%)였고, 개신교(11%)·가톨릭(6%)을 크게 앞선다. 불교문화가 청년층에 파고든 이유는 간단하다.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도도 없고, 헌금 요구도 없다. 교리보다 수행을 앞세우고, 마음 수행·친환경·가치소비라는 키워드가 MZ세대의 삶의 방향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여기에 '해탈컴퍼니' 같은 불교 기반 브랜드들이 굿즈와 팝업으로 진입 장벽을 낮췄고, DJ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씨)이 EDM과 불경을 결합한 퍼포먼스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20·30대 비중도 2019년 32.1%에서 2023년 40.7%로 급증했다. '종교'가 아닌 '문화'로 소비되기 시작한 불교의 풍경이다.
2025년을 기억하는가 — 20만 명이 모인 전례
지난해 서울 코엑스 C홀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역대 최다인 20만 관람객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사전등록자 4만 2,765명 중 76%가 2030세대였다. 368개 업체, 481개 부스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불교문화산업을 펼쳐 보였고, 카피바라와 연꽃을 합친 캐릭터 굿즈, '고냥미' 인형, 밀크티 '스밀스밀'까지 MZ 취향을 저격한 아이템들이 화제를 모았다. 봉은사 일대에서 열린 국제선명상대회에는 13만 명이 참가했고, 선명상축제에는 28만 명이 몰렸다.
그 열기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2026년 행사를 더욱 기대할 이유가 충분하다.
2026 서울국제불교박람회 — '불교가 놀이가 되다'
올해로 14회를 맞는 '2026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오는 4월 2일(목)부터 5일(일)까지 서울 강남 코엑스 B홀에서 열린다. 슬로건은 '불교가 놀이가 되고, 전통이 산업이 되다'. 올해의 핵심 테마는 불교 사상 '공(空)'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공 사상을 공(球)놀이로 경험하고, 반야심경은 힙합과 DJ 퍼포먼스로 재해석된다. 지난해보다 늘어난 430여 개 부스에는 불교문화산업전, 붓다아트페어(BAF), 해외 불교국가 국제초청전이 함께 펼쳐지고, 신진 크리에이터를 발굴하는 '크리에이터 굿즈전'도 신설됐다. '꽃스님'으로 알려진 화엄사 홍보국장 법정스님은 신간 출간 기념 사인회도 진행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사전등록 시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2026 국제선명상대회·선명상축제 — AI 시대의 내면을 묻다
박람회와 동시에, 강 하나 건너 봉은사 일대에서는 또 다른 대규모 행사가 펼쳐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주최의 '2026 국제선명상대회(Seon Meditation Summit)'가 4월 3일, '선명상축제'가 4월 4~5일 봉은사 및 봉은문화회관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 3회를 맞는 국제선명상대회의 주제는 'AI 시대의 선명상'. 기술이 빨라질수록 마음이 느려지고 싶은 역설을 이 행사는 정면으로 다룬다. AI가 참가자의 고민과 마음 상태를 분석해 맞춤형 명상법·차(茶)·화두 문구를 현장에서 제안하는 '마음처방전' 프로그램이 이색적이다. 간화선 수행의 대가 수불스님(안국선원장)이 이끄는 프로그램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41개 세부 프로그램 대부분이 조기 마감됐다. 지난해 13만 명 참가에서 올해는 온·오프라인 포함 20만 명을 목표로 한다. 선명상축제는 지난해 28만 명에서 35만 명을 향해 나아간다.
코엑스에서 봉은사까지 — 도심 속 명상 순례
코엑스에서 불교 굿즈를 손에 쥐고, 걸어서 10분 거리 봉은사에서 선명상을 체험하는 하루. 4월 첫째 주말의 강남은 그렇게 국내 최대 불교·명상 문화 벨트로 변모한다. 비신자도, 명상 초보도, 그냥 지나치다 들어온 이도 환영받는 자리다. 불교가 요즘 힙한 이유는 결국 하나다 — 들어오는 문이 낮아졌고, 안은 생각보다 넓다.
2026년 봄, 힙불교에 마음을 빼앗긴 20대들은 벚꽃놀이를 절에서 할지도 모르겠다.
